'미스터 클린'이라 불린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
자유 게시판
2009/07/03 10:25

출처 : 버즈리포트
인텔의 창업자 중 한명인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여러 제도를 만들어냈다. 직원평가제도 역시 앤디 그로브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존 리드라는 직원이 평가제도에 불만을 품고서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앤디 그로브는 그를 달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앤디 그로브는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존 리드 기념 점심식사라고 불렀다.
사직 면담제도도 앤디 그로브의 작품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에게서 회사의 대한 불만을 듣고 참고하려고 것으로 퇴직하는 사람이야말로 회사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앤디 그로브의 생각이었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깊이 관여했던 직원인 파긴이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를 내자 앤디 그로브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면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파긴의 사직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앤디 그로브는 순순히 그를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텔에 대적할 회사를 만들 수도 있는 파긴의 자존심을 건드려 기세를 꺾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앤디 그로브는 파긴이 형편없는 실력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온갖 폭언을 늘어놓는다. 사직면담 제도의 당초 취지는 사직하는 사람에게 회사의 문제점을 듣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국 회사를 나가는 사람이 인텔과 대적할 수 없도록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제도로 변해버렸다.
앤디 그로브는 회사의 각종 소송을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첨단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특허부분은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인텔에게 있어 특허관련 소송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1960~70년대만 해도 특허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인텔은 페어차일드 반도체 시절 연구했던 결과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반도체회사가 수십 개씩 쏟아지면서 인텔의 제품을 복제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
특히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인텔은 크나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인텔은 특허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처했다.
사실 자금이 풍부한 인텔은 소송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쟁이 될 수 있는 제품은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했다. 대부분 흐지부지 끝났지만 돈이 없는 회사의 경우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인텔과 강제적인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에게도 기밀 유지를 이유로 빈번하게 소송을 냈고 이는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데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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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직원들의 작업계획표까지 철두철미하게 체크하기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목표할당량을 결정하도록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의에서 사람들이 한 이야기 한마디까지 다 적어서 당초 약속한대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끝까지 따질 정도였다.
또한 직원들의 업무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관리했다. 회사 내에 안 좋은 소문이 돈다면 앤디 그로브와 마주 앉아 면담을 해야 했다. 그는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할 때도 직접 나서서 설득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노조가 생겼을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호응을 얻었다. 노조 결성은 앤디 그로브의 솔직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최종 투표에서 무효가 된다.
회사의 규율과 규칙도 앤디 그로브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아침 8시보다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은 지각자 명단에 올라갔고 앤디 그로브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되었다. 평등주의를 제1의 기업문화로 받아들이는 회사인 만큼 회장이었던 고든 무어나 CEO였던 앤디 그로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직원들이 지각자 명단제도를 싫어했지만 아무도 앤디 그로브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근무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역시 앤디 그로브의 몫이었다. 그는 사내 잡담을 금지시켰으며 라디오나 음악도 듣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서 사내를 돌아다니며 수시로 직원들의 책상까지 검사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책상이 지저분하거나 어지럽혀있으면 앤디 그로브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원래 미스터 클린이라는 말은 회사 내에 먼지하나 허용하지 않았던 그의 완벽주의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어느덧 그의 도덕적인 기업 운영에 대한 찬사가 됐다. 2001년 엔론 사태와 월드컴의 기업회계 부정으로 기업인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을 때 많은 언론들이 미스터 클린 앤디 그로브를 언급하며 그의 기업관을 칭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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