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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버즈리포트

IBM의 시초는 1911년 설립된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rporation)이며 1924년 현재의 회사명으로 바꾸었다. 1888년 미국정부에서는 대규모 통계조사를 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공모했다. 과거의 방식으로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돈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역무원이었던 홀러리스의 아이디어가 당선된다. 특수종이에 구멍을 뚫는 방식의 천공카드 시스템을 고안하여 통계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낸다. 이를 계기로 그는 타뷸레이팅 머신(Tabulating Machine)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1911년 타뷸레이팅 머신은 저울업체인 컴퓨팅 스케일 코퍼레이션(Computing Scale Corporation)과 저장 장치 전문회사인 ITR(the International Time Recording Company)을 합병해 IBM의 전신인 CTR로 재탄생한다. 오늘날에도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하나로 뽑히는 토마스 왓슨이 1914년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회사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토마스 왓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의 경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외향적인 성격의 그는 따분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각종 피아노 같은 악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됐다.

수중에 장사를 할 돈이 만들어지자 정육점을 차렸는데 친구에게 빌려준 거액의 돈을 떼이고 설상가상으로 가게마저 망하며 어려움에 처한다. 그는 다시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사무기기 업체인 NCR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한다.

NCR에서 토마스 왓슨의 재능은 완전히 폭발하게 된다. 놀라운 영업실적을 기록하면서 승진을 거듭했으며 왓슨이 하나의 지점을 맡으면 그 지역 주변은 NCR의 제품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가 승승장구하면 할수록 경쟁 업체들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급기야 라이벌 업체들은 왓슨을 상대로 반독점 금지법을 어겼다면서 소송을 걸었다.

왓슨은 상대회사의 영업점 근처에 지점을 내거나 영업사원을 스카우트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법으로 금지하는 사항이었다. 결국 왓슨은 5,000달러의 벌금과 함께 1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왓슨과 NCR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충성을 다 바친 NCR이 자신을 내쳤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토마스 왓슨이 총책임자로 취임했던 1914년만 하더라도 CTR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Think’라는 슬로건을 통해서 직원들에게 생각을 강조했고 이는 제품의 기술혁신을 이뤄냈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이 큰 성공을 거둬 1914년 400만 달러였던 매출이 1920년에는 1,400만 달러로 4배나 뛰며 흑자로 반전했다.

그는 세계공황으로 경제가 나락에 빠질 때도 직원을 한명도 해고하지 않으며 직원간의 단결을 도모했다. 또한 직원들에게 짙은 양복에 하얀 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꼭 메도록 했는데 이는 고객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이는 고객만족 경영으로 이루어져 CTR의 성공을 이루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회장에 취임한 1924년에 그는 해외시장에서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사명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바꾸며 회사 성장을 견인한다. IBM이 컴퓨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에이켄이 마크1이라는 컴퓨터를 개발할 때 제작비용과 장비를 제공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마크 1의 발표회장에서 당시 왓슨사장은 자신의 좌석이 뒷자리에 있는 것에 격분한다. 당시 언론에서도 IBM의 역할은 별로 언급이 없고 오직 하버드 대학교의 에이켄 교수만을 칭송할 뿐이었다. 자신의 푸대접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마크 1보다 훨씬 뛰어난 컴퓨터를 자체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왓슨 연구소를 1945년에 세운다. 그리고 드디어 IBM의 첫 번째 컴퓨터 SSEC(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를 개발한다. 하지만 SSEC는 상업적인 시도라기보다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왓슨조차도 SSEC의 거대한 크기에 짜증을 부릴 정도였다. 1952년 IBM은 마침내 대량생산이 가능한 IBM 701을 개발하고 판매에 돌입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55년부터는 토마스 왓슨의 아들인 톰 왓슨 주니어가 사장이 되어 경영을 승계한다. 토마스 왓슨은 회사의 미래가 타자기나 천공카드 시스템 같은 사무기기에 있다고 봤지만 그의 아들 톰 왓슨은 컴퓨터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둘은 자주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아들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고 경영을 넘겨주었다.

톰 왓슨은 컴퓨터 관련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연 수입의 1/3을 컴퓨터 개발과 연구에 쏟아 부을 정도였다. 1964년 결국 원자폭탄 개발비용보다 두 배가 넘는 50억불을 들여 최초의 메인 프레임 컴퓨터로 일컬어지는 SYSTEM/360의 개발을 완료한다. 50억불짜리 도박은 완벽하게 성공해 SYSTEM/360은 정부, 연구소, 기업 등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사용되었고 IBM이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9/07/03 10:28 2009/07/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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