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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637.  손자병법에서 경영전략 얻은 '소프트뱅크 손정의' 블로그관리자 2009/07/03
  2. 1636.  ‘생각’의 중요성 강조한 IBM의 기업문화 블로그관리자 2009/07/03
  3. 1635.  '미스터 클린'이라 불린 인텔 창업자 '앤디 그로브' 블로그관리자 2009/07/03
  4. 1634.  MS '빌 게이츠'가 일하는 방식 엿보기 블로그관리자 2009/07/03
  5. 1633.  2009.7.3 (금) 정보통신주요기사 블로그관리자 2009/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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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의는 전 세계 800여개의 회사에 투자를 하고 있는 소프트뱅크를 창업했으며 현재는 회장겸 CEO로 재직 중이다. 소프트뱅크는 1981년 컴퓨터 소프트웨어 유통을 시작하여 단 1년 만에 4,600개의 가맹점과 35억엔의 매출을 기록하며 일본경제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컴퓨터 업계의 신데렐라로 통하던 손정의는 컴퓨터 잡지 출판시장에 진출해 단 3년 만에 매달 600만부를 발행하는 성공적인 출판업자가 되기도 했다.

손정의가 세계시장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95년 세계적인 컴퓨터 전시회인 컴덱스의 운영권을 8억 달러에 인수하면서부터다. 미국 잡지사 지프 데이비스를 21억 달러라는 거액에 사들임으로써 손정의는 세계적인 큰손으로 불리게 된다.

그는 지프 데이비스를 통해서 앞으로 크게 발전할 유망한 회사를 발굴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추천받은 회사가 야후였다. 당시 야후는 2백만 달러의 매출에 백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하는 소규모회사에 불과했다. 하지만 손정의는 야후의 CEO였던 제리 양을 만나고 성공을 확신하며 1억 5,000만 달러를 투자해 35%의 지분을 확보한다. 그 후 야후는 승승장구하며 나스닥에 상장되고 손정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게 된다.

그의 재산은 2000년 한때 재산이 760억 달러로 세계 갑부순위 4위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해에 그는 포브스가 선정하는 올해의 비즈니스맨에 선정되어 명성을 날렸다. 하지만 인터넷 거품이 꺼지면서 그는 단 1년 만에 재산이 94%나 줄어드는 아찔한 순간을 경험해야 했다.

칭찬일색이던 언론은 이때부터 그의 사업에 회의감을 가지며 많은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다. 표적이 된 것은 그의 시가 총액 경영이었다. 회사를 인수 합병하면서 덩치를 키우고 주식시장에 상장시킨 다음 주가를 올려 이익을 보는 방식이었다. 이 방식은 회사가 창출해내는 실제 이익보다는 주주들의 주머니를 빼앗는 것에 불과하다며 많은 비난을 들었다.

하지만 손정의는 돈이 없어서 제때 투자를 받지 못하는 회사를 발굴해 물과 영양분을 주는 것이라고 벤처 캐피탈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주위의 비아냥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일관되게 지켜 좋은 결과를 얻었다.

중국 샨다에 투자했던 4,000만 달러는 5억 달러가 되서 돌아왔고 1,800만 달러를 투자한 타오바오닷컴의 주식은 13억 달러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포브스지가 2006년에 조사한 바에 의하면 손정의는 70억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 부호의 순위 중 1위로 밝혀졌다.

그에 대한 비난도 실적이 다시 눈에 띄게 좋아지자 수그러들고 있다. 다양한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모습을 두고 이전에는 무모하다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이제는 훌륭한 도전정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는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 순위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해 어느덧 일본 디지털 경제의 선장으로 인정받고 있다.

손정의는 결정의 순간마다 책을 읽었다
손정의는 재일교포 3세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차별을 경험했다. 일본사회에서는 영원히 비주류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분노하며 미국유학을 결심했던 그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실력 앞에서는 일본도 결국 손정의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손정의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이다. 손자는 춘추 전국시대의 사람으로 원래는 제나라 사람이었다. 제나라는 당시 중국에서 최고로 문명이 발전한 국가이자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강국이었다.

그러나 손자는 이미 성장을 다한 제나라보다는 앞으로가 더 유망한 오나라에 매력을 느끼고 제나라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국인 오나라로 간다. 손자는 국가에 연연하기보다 자신의 실력을 맘껏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이는 스스로 무국적자라고 말하는 손정의와도 일맥상통한다.

실제로 손자병법은 손정의의 사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 책이다. 그는 손자병법을 읽고 자신의 경영전략과 접목시켜 손정의 제곱병법을 만들기도 했다. 이는 소프트 뱅크의 핵심적인 사업전략으로 회사의 계획과 실행에 있어서 우선 고려되는 사항이다. 이렇듯 손정의는 손자가 환생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했고 디지털 시대의 손자처럼 행동하고 있다.

손정의 제곱병법

1. 일류공수군(一類攻守群) :
공수의 균형을 이룬 팀을 이루어 최고가 된다.

2.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 :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사람들 간의 공감대가 가장 중요하고 주변의 상황과 변화를 알아야하며 훌륭한 리더십으로 법과 규율을 다스려야 한다.

3. 지신인용엄(智信仁勇嚴)
지도자는 지혜, 신의, 어짐, 용기, 엄격함이 있어야 한다.

4. 정정략칠투(頂情略七鬪)
이길 수 있는 확률이 70%가 되어야 싸운다.

5. 풍림화산해(風林火山海)
움직일 때는 바람처럼 이동하고 멈출 때는 숲처럼 정지하고 공격할 때는 불처럼 뜨거워야 하고 방어할 때는 산처럼 단단해야하며 상대를 만나면 바다처럼 삼켜야 한다.

2009/07/03 10:33 2009/07/03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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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버즈리포트

IBM의 시초는 1911년 설립된 CTR(Computing Tabulating Recording Corporation)이며 1924년 현재의 회사명으로 바꾸었다. 1888년 미국정부에서는 대규모 통계조사를 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공모했다. 과거의 방식으로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너무나 많은 돈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투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때 역무원이었던 홀러리스의 아이디어가 당선된다. 특수종이에 구멍을 뚫는 방식의 천공카드 시스템을 고안하여 통계분야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어낸다. 이를 계기로 그는 타뷸레이팅 머신(Tabulating Machine)이라는 회사를 창업하게 된다.

1911년 타뷸레이팅 머신은 저울업체인 컴퓨팅 스케일 코퍼레이션(Computing Scale Corporation)과 저장 장치 전문회사인 ITR(the International Time Recording Company)을 합병해 IBM의 전신인 CTR로 재탄생한다. 오늘날에도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하나로 뽑히는 토마스 왓슨이 1914년 사장으로 선임되면서 회사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다.

토마스 왓슨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회사의 경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외향적인 성격의 그는 따분하게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외부에서 활동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각종 피아노 같은 악기를 판매하는 영업사원이 됐다.

수중에 장사를 할 돈이 만들어지자 정육점을 차렸는데 친구에게 빌려준 거액의 돈을 떼이고 설상가상으로 가게마저 망하며 어려움에 처한다. 그는 다시 자신의 적성을 살려서 사무기기 업체인 NCR의 영업사원으로 입사한다.

NCR에서 토마스 왓슨의 재능은 완전히 폭발하게 된다. 놀라운 영업실적을 기록하면서 승진을 거듭했으며 왓슨이 하나의 지점을 맡으면 그 지역 주변은 NCR의 제품이 완전히 장악했다. 그가 승승장구하면 할수록 경쟁 업체들의 입지는 축소되었다. 급기야 라이벌 업체들은 왓슨을 상대로 반독점 금지법을 어겼다면서 소송을 걸었다.

왓슨은 상대회사의 영업점 근처에 지점을 내거나 영업사원을 스카우트했는데 지금으로 보면 아무 일도 아니었지만 당시에는 법으로 금지하는 사항이었다. 결국 왓슨은 5,000달러의 벌금과 함께 1년의 징역형을 받는다. 이 과정에서 왓슨과 NCR과의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충성을 다 바친 NCR이 자신을 내쳤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토마스 왓슨이 총책임자로 취임했던 1914년만 하더라도 CTR은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는 ‘Think’라는 슬로건을 통해서 직원들에게 생각을 강조했고 이는 제품의 기술혁신을 이뤄냈다. 특히 해외시장 개척이 큰 성공을 거둬 1914년 400만 달러였던 매출이 1920년에는 1,400만 달러로 4배나 뛰며 흑자로 반전했다.

그는 세계공황으로 경제가 나락에 빠질 때도 직원을 한명도 해고하지 않으며 직원간의 단결을 도모했다. 또한 직원들에게 짙은 양복에 하얀 셔츠 그리고 넥타이를 꼭 메도록 했는데 이는 고객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 이는 고객만족 경영으로 이루어져 CTR의 성공을 이루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회장에 취임한 1924년에 그는 해외시장에서의 인지도 상승을 위해 사명을  IBM(International Business Machines)으로 바꾸며 회사 성장을 견인한다. IBM이 컴퓨터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건 하버드 대학교 교수인 에이켄이 마크1이라는 컴퓨터를 개발할 때 제작비용과 장비를 제공하면서부터다.

하지만 마크 1의 발표회장에서 당시 왓슨사장은 자신의 좌석이 뒷자리에 있는 것에 격분한다. 당시 언론에서도 IBM의 역할은 별로 언급이 없고 오직 하버드 대학교의 에이켄 교수만을 칭송할 뿐이었다. 자신의 푸대접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마크 1보다 훨씬 뛰어난 컴퓨터를 자체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이를 위해서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딴 왓슨 연구소를 1945년에 세운다. 그리고 드디어 IBM의 첫 번째 컴퓨터 SSEC(Selective Sequence Electronic Calculator)를 개발한다. 하지만 SSEC는 상업적인 시도라기보다 만들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왓슨조차도 SSEC의 거대한 크기에 짜증을 부릴 정도였다. 1952년 IBM은 마침내 대량생산이 가능한 IBM 701을 개발하고 판매에 돌입해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55년부터는 토마스 왓슨의 아들인 톰 왓슨 주니어가 사장이 되어 경영을 승계한다. 토마스 왓슨은 회사의 미래가 타자기나 천공카드 시스템 같은 사무기기에 있다고 봤지만 그의 아들 톰 왓슨은 컴퓨터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때문에 둘은 자주 논쟁을 벌였지만 결국 아들의 생각이 옳다고 판단하고 경영을 넘겨주었다.

톰 왓슨은 컴퓨터 관련 사업에 과감하게 투자했다. 연 수입의 1/3을 컴퓨터 개발과 연구에 쏟아 부을 정도였다. 1964년 결국 원자폭탄 개발비용보다 두 배가 넘는 50억불을 들여 최초의 메인 프레임 컴퓨터로 일컬어지는 SYSTEM/360의 개발을 완료한다. 50억불짜리 도박은 완벽하게 성공해 SYSTEM/360은 정부, 연구소, 기업 등 컴퓨터가 필요한 모든 곳에서 사용되었고 IBM이 컴퓨터 시장을 독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2009/07/03 10:28 2009/07/03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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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버즈리포트

인텔의 창업자 중 한명인 앤디 그로브는 인텔의 여러 제도를 만들어냈다. 직원평가제도 역시 앤디 그로브가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존 리드라는 직원이 평가제도에 불만을 품고서 폭발한 적이 있었는데 앤디 그로브는 그를 달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그 사건이 있은 후에 앤디 그로브는 회사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기 위해서 점심식사를 함께 했는데 사람들은 이를 존 리드 기념 점심식사라고 불렀다.

사직 면담제도도 앤디 그로브의 작품이다. 회사를 그만두는 사람에게서 회사의 대한 불만을 듣고 참고하려고 것으로 퇴직하는 사람이야말로 회사에 대해 가장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앤디 그로브의 생각이었다.

세계 최초의 마이크로프로세서 개발에 깊이 관여했던 직원인 파긴이 어느 날 갑자기 사직서를 내자 앤디 그로브는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면담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파긴의 사직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새로운 회사를 차린다는 이야기를 듣자 앤디 그로브는 순순히 그를 보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인텔에 대적할 회사를 만들 수도 있는 파긴의 자존심을 건드려 기세를 꺾어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결국 앤디 그로브는 파긴이 형편없는 실력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성공하기 힘들 것이라면서 온갖 폭언을 늘어놓는다. 사직면담 제도의 당초 취지는 사직하는 사람에게 회사의 문제점을 듣겠다는 의도였으나 결국 회사를 나가는 사람이 인텔과 대적할 수 없도록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제도로 변해버렸다.

앤디 그로브는 회사의 각종 소송을 진두지휘하기도 하였다. 첨단제품을 만드는 회사에서 특허부분은 매우 민감하다. 그래서 인텔에게 있어 특허관련 소송은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였다. 1960~70년대만 해도 특허라는 개념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인텔은 페어차일드 반도체 시절 연구했던 결과를 토대로 제품을 개발했다. 하지만 반도체회사가 수십 개씩 쏟아지면서 인텔의 제품을 복제하는 회사들이 늘어났다.

특히 일본 업체들이 메모리와 마이크로프로세서 기술을 무단으로 도용하여 낮은 가격에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인텔은 크나큰 위기를 겪어야 했다. 이를 계기로 인텔은 특허문제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대처했다.

사실 자금이 풍부한 인텔은 소송을 남발하는 경향이 있었다. 경쟁이 될 수 있는 제품은 무차별적으로 소송을 했다. 대부분 흐지부지 끝났지만 돈이 없는 회사의 경우 소송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인텔과 강제적인 합의를 보는 경우도 있었다. 회사를 그만둔 사람에게도 기밀 유지를 이유로 빈번하게 소송을 냈고 이는 직원들이 다른 회사로 옮기는데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그는 직원들의 작업계획표까지 철두철미하게 체크하기로 유명하다.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목표할당량을 결정하도록 하지만 원래 계획대로 개발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불호령이 떨어졌다. 회의에서 사람들이 한 이야기 한마디까지 다 적어서 당초 약속한대로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끝까지 따질 정도였다.

또한 직원들의 업무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관리했다. 회사 내에 안 좋은 소문이 돈다면 앤디 그로브와 마주 앉아 면담을 해야 했다. 그는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할 때도 직접 나서서 설득했다. 공장을 돌아다니며 노조가 생겼을 때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호응을 얻었다. 노조 결성은 앤디 그로브의 솔직한 이야기에 영향을 받아 최종 투표에서 무효가 된다.

회사의 규율과 규칙도 앤디 그로브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아침 8시보다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은 지각자 명단에 올라갔고 앤디 그로브의 특별 관리 대상이 되었다. 평등주의를 제1의 기업문화로 받아들이는 회사인 만큼 회장이었던 고든 무어나 CEO였던 앤디 그로브도 예외는 아니었다. 많은 직원들이 지각자 명단제도를 싫어했지만 아무도 앤디 그로브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근무환경을 관리하는 것도 역시 앤디 그로브의 몫이었다. 그는 사내 잡담을 금지시켰으며 라디오나 음악도 듣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지팡이를 들고서 사내를 돌아다니며 수시로 직원들의 책상까지 검사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책상이 지저분하거나 어지럽혀있으면 앤디 그로브의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원래 미스터 클린이라는 말은 회사 내에 먼지하나 허용하지 않았던 그의 완벽주의를 일컫는 말이었으나 어느덧 그의 도덕적인 기업 운영에 대한 찬사가 됐다. 2001년 엔론 사태와 월드컴의 기업회계 부정으로 기업인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올랐을 때 많은 언론들이 미스터 클린 앤디 그로브를 언급하며 그의 기업관을 칭송했다.

2009/07/03 10:25 2009/07/03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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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전자신문

빌 게이츠는 어린 시절 선생님도 울릴 정도의 뛰어난 수학실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프로그래밍에서도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빌 게이츠의 프로그래밍 실력에 대해서 많은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는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부탁을 받아 시간표를 짜주었고 프로그래밍 알바를 통해서 대학교 전체 등록금을 벌어들였을 정도였다.

그가 전문 프로그래머의 길을 걷게 된것은 미국 최초의 개인용 컴퓨터인 MITS의 알테어 8800이 공개된 후 여기에 베이직을 납품하면서 부터다. 그런데 알테어 8800이 등장하자 미국전역에서 서로 베이직을 납품하겠다고 경쟁이 벌어졌다.

이때 MITS의 사장은 가장 먼저 알테어 8800에서 완벽하게 돌아가는 베이직에 납품권을 주겠다고 말한다. 전국에서는 서로 빨리 알테어 8800용 베이직을 만들려고 했지만 결국 빌 게이츠와 폴 알렌이 함께 만든 MS-BASIC이 승자가 되었다.

수학과 프로그래밍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빌 게이츠는 일하는 방식도 철저한 계산과 이치따지기에 맞춰져 있다. 원래 빌 게이츠는 폴 알렌과 사업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50:50의 지분을 가지고 일을 했다. 어느날 자신이 폴 알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음을 알고 다시 지분을 협상한다. 여기서 지분을 65:35로 바꾸는데 폴 알렌은 손쉽게 합의를 봐주었다. 친구사이라도 철저한 계산을 통해서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이 바로 빌 게이츠였던 것이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빌 게이츠는 하루 18시간을 일했고 300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일 중독자에 가까운 빌게이츠는 새벽 두세시에도 모르는 것이 있으면 직원에게 전화를 하는 걸로 유명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과 일의 균형을 이루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또한 시간 낭비를 가장 싫어하는 빌 게이츠의 성격 때문에 직원들은 그의 앞에서는 일부러 뛰어다닌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빌 게이츠는 일부러 직원들을 다그치고 모욕을 주기로 유명하다. 그러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더욱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의 독설을 듣는 것은 괴롭지만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오히려 빌게이츠에게 큰소리치는 더 강한 사원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빌게이츠에게 욕설까지 하던 사람은 나중에 승진을 하기도 했다. 이렇게 욕설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회의는 전투처럼 치열하기 일쑤다.

빌 게이츠가 직원들을 다그칠 때 자주 하는 말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내가 너 같은 사람에게 월급을 준다니 정말 아깝다’는 말이고 그리고 둘째는 ‘내가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겠느냐’는 비아냥거림이다. 스스로 뛰어난 개발자 출신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비난일 것이다.

그는 회사를 완전히 자신의 손으로 통제하고 싶었고 그래서 회사를 허브 앤 스포크(hub & spoke)로 운영했다. ‘허브 앤 스포크’란 자전거 바퀴의 중앙 축에 살이 연결되어 있듯이 회사의 모든 사업부가 빌게이츠와 직접 연결되어 회사의 주요업무를 직접 결정하는 방식이다.

이 때문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일개직원도 빌 게이츠와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많았다. 실제로 그는 자주 개발팀을 어슬렁거렸고 사원들과 대화했다. 일반 직원도 2~3단계만 지나면 빌 게이츠를 직접 만나 자신의 일을 설명할 수 있었고 길을 걷는 그를 일반 직원이 불러서 일에 대해서 상의하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생각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이었다. 특히 그는 새롭고 신선한 사고방식을 유지하기 위해서 매년 생각주간을 두었다. 이 시기에는 외부와 연락을 끊고 일부러 인적이 드문 시골에 체류하며 혼자서 회사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생각했다. 생각 주간은 그에게 매우 중요한 시간이어서 몇 달 전부터 철저히 준비를 할 정도였다.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씨는 빌 게이츠의 위대한 점은 자신의 생각을 언제든지 바꾸는 용기에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확고했던 생각을 부하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바꾸는 경우가 많다.

원래 빌 게이츠는 인터넷이 아니라 독자적인 통신서비스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 직원 중 한명이 이메일로 인터넷의 중요성을 알렸고 이글을 본 빌게이츠는 즉시 자신의 생각을 철회했다. 이렇게 직원의 메일을 통해서도 잘못된 점을 바로잡을 줄 아는 열린 사고야 말로 진정한 빌 게이츠의 저력이 아닌가 싶다.

2009/07/03 10:21 2009/07/0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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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7.3 (금) 정보통신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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